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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이야기.....  "미안해 여보"

홀짝귀신디여니
| 조회 : 1714 | 댓글 : 0 | 추천 : 1 | 등록일 : 2022-01-16 오후 7:38:22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 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양푼의 비빔밥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올 거야?"

"나가 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몇 번을 버티다 마침내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나는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다.
자나 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 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을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 오라고 전화했다고 한다.

"어,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줘 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응···.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미련해가 뭐냐며 대들 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를 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 날 출근을 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 집 가. 나는 우리 집 갈 테니까."

큰소리를 칠 대로 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 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 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어?"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지면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받았어.
당신이 한 번 전화만 해 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 주길 바랬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의사의 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3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는 아이들 손을 붙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피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피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것을 해 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 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월 말에 타는 것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그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고 나 생명 보험도 들었거든?
친구가 하도 들으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200만 원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기억나?"

"내가 뭐라 그랬더라?"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돋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아, 그랬나···?"

"그리고 당신이 나 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때는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고."

아내는 금방 잠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 드리자.
···여보, 내가 가면 좋아하실 건데.
···여보, 아니라 하면 안 간다?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어젯밤에 얘기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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